그러나 누군가 내게 사회책임투자가 무엇이냐고 물어본다면, 나는 제일 먼저 ‘길게 보고 투자하는 것’이라고 답하겠다. 즉, 장기적 안목을 갖고 장기 투자하는 것이라는 말이다.
그런데 이렇게 쉽게 들리는 말을 실천해내기란 참으로 어렵다. 왜 그럴까? 나는 이 문제를 육상경기에 빗대어 생각해 보고자 한다.
육상경기의 꽃은 단연 마라톤과 100미터 달리기다. 둘 중에 어느 하나라도 없다면 육상경기는 참 싱거울 것이다. 100미터 달리기 가 긴박한 재미와 역동적인 흥분을 불러 일으킨다면, 마라톤은 은근한 재미와 감칠맛 나는 수읽기의 또 다른 묘미를 제공한다.
양자는 또한 달리는 방법도 확연히 다르다. 100미터 선수들은 눈 앞에 보이는 결승점을 향해 숨도 멈춘 채 질풍노도와 같이 내달린 다면, 마라톤 선수들은 가도가도 보이지 않는 목표점을 향해 때로는 천천히, 때로는 성큼성큼 달려 나간다.
관전법도 많이 다르다. 100미터의 관중들은 한시도 한눈을 팔면 안 된다. 자칫 한눈 팔게 되면 경기는 보지도 못하고 그냥 끝나 버린다.
그에 비해 마라톤의 관전자들은 우선 느긋해야 한다. 그러면서 천천히 선수들의 전략과 얼굴표정, 주행자세, 구간 당 그들의 기록과 코스의 난이도 등등 수 없이 많은 변수들을 고려하며 꾸준히 지켜본다.
흔히들 기업 경영을 일컬어 마라톤이라고 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한 분기나 한 회계연도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오랜 기간 동안 꾸준 히 지속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선수들은 전체 구간의 기록을 의식하며 전략을 짜고 완급을 조절해 나가야 한다.
기업 경영이 마라톤이라면, 자본시장은 기업이라는 선수를 지원, 육성하는 스폰서쯤에 비견될 수 있다. 그런데 만일 그 스폰서가 마라 톤 선수들에게 단거리 선수처럼 연습하고, 시합에서 42Km의 매 1Km마다 전력 질주할 것을 요구하며 이러한 요구를 달성하지 못하 는 선수들을 지원 대상에서 제외할 것이라고 으름장을 놓는다면 어떻게 될까?
그러면 아마도 마라톤 선수들은 단기 실적을 의식한 나머지 몇 개 구간은 좋은 실적을 낼지도 모른다. 하지만 전체구간을 놓고 보 면 오버페이스로 인해 중도 탈락하거나, 수준 이하의 성적을 낼 가능성이 아주 높을 것이다. 따라서 그 스폰서도 함께 실패할 가능성 이 높을 것이다.
오늘날의 자본시장은 마라톤 선수들에게 단거리 선수들의 연습법과 주행 방법을 요구하는 것과 같은 커다란 오류에 빠져 있다. 즉, 자 본시장의 투자자들은 기업들에게 분기실적에 올인 할 것을 요구한다. 기업 경영자들은 자본의 공급자인 시장의 요구를 무시하기 힘들 다.
따라서 기업경영 역시 100미터 달리기처럼 되어버렸다. 스톡옵션이라는 인센티브는 기업 경영자들을 단거리 선수의 근육질 몸매로 만들 어 버린다. 그들은 단기주가에 우호적인 정책과 방법들을 다 모아서 주가를 들어 올리기 위해 안간 힘을 쓰기도 한다.
또 자본시장을 둘러싼 환경은 어떠한가? 증권회사들은 끊임없이 사고 팔 거리들을 쏟아 놓는다. 인터넷의 발달은 어디서건 실시간으 로 정보를 얻게 하고 즉각적으로 매매에 돌입할 수 있게 한다. 언론은 항상 호재, 악재를 뿌리며 투자자들을 조급하고 성마르게 만든 다.
자본시장의 단기화는 많은 문제점을 일으킨다. 스폰서의 눈치를 보는 기업들은 눈 앞의 이익을 주로 추구하게 된다. 따라서 그들에 게 혁신작업과 R&D는 비용으로만 인식되며, 종업원에 대한 투자와 고객들로부터의 명성, 브랜드 등과 같은 무형자산 투자에 는 상대적으로 소홀하게 된다. 그 대신 당장 순이익과 연결될 수 있는 투자에만 골몰하게 된다.
단기 실적에 연연하는 기업들은 비용의 외부전가에 대한 유인을 갖는다. 매출액, 영업이익률, 주당 순이익(EPS) 등의 목표에 지나 치게 집착하면, 분식회계, 하청업체 가격인하 압력, 폐수 방류, 대기오염 등등 유혹에 늘 노출될 수 있다는 말이다. 쉽게 말해 반 칙, 변칙 등,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돈 벌이에 나설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생각해 보라. 설사 이러한 기업들이 비용의 외부 전가를 통해 반짝 성장했다 하더라도 그 기업들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을 안고 가는 격이나 마찬가지다. 잘 못 터지면 회사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질 수 있다.
또한 무형자산 투자에 소홀한 회사, 종업원과 고객이 불만족한 회사가 지식 정보화 시대에서 지속 가능하게 발전할 것을 기대한다면 그것은 연목구어를 외치는 것과 다름 아닐 것이다.
사회책임투자는 기업들로하여금 사회에 대한 책임을 다할 것을 요구하는 투자방식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그것은 100미터가 아닌, 42 킬로미터의 마라톤을 뛰는 선수들에게 마라톤을 제대로 뛸 수 있게 도와주는 역할,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기업들이 중요한 자 산에 적절히 자본을 배분하고, 잠재적 위험을 고려하며 지속 가능하게 발전해 나갈 수 있도록 협조, 지원하고 투자하며 함께 이익 을 취해 나가는 것이다.
이미지출처 : beginnersinvest.about.com
장기투자의 교본이 되어버린 워런 버핏(Warren Buffet)은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단기투자를 투자라고 말하는 것은 흡 사 원나잇 스탠드(하룻밤의 정사)를 일컬어 로맨스(아름다운 사랑)라고 이야기하는 것과 같다”라고 말이다.
사회책임투자는 하룻밤의 정사에 취해 있는 자본시장을 향해 투자의 본령으로 돌아가자고 외치는 목소리다. 잠시 잠깐의 내 돈만 챙기 고 마는 것이 아니라, 멀리 보고, 길게 보며 사회와 기업과 나의 돈이 함께 같은 길을 가자고 던지는 탄원이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