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8월 2일 일요일

책임투자의 다른 이름, '원칙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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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출처 : www.nndb.com


감리교의 창시자인 존 웨슬리(John Wesley)는 1760년 '돈의 사용법' (The Use of Money)이라는 유명한 설교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남긴다.

"돈을 마음껏 벌라. 그렇지만 네 양심과 이웃의 건강과 재산을 해치면서까지 벌지는 말라."

여기서 그는 도박산업, 고리대금업, 주류업, 불공정 상행위, 고된 노동을 강요하는 사업, 그리고 당시 막 시작된 화학 산업을 이른바 죄악산업으로 지목하고 있다.

웨슬리의 이러한 설교는 바로 윤리투자의 기본원칙이 된다. 윤리투자에서는 주로 네거티브 스크리닝(투자에서 배제하는 방식)을 통해 죄악 산업에 해당하는 기업들의 주식매입을 금한다.

죄악산업의 기업들에 투자함으로써 결과적으로 그 산업들을 번성하게 한다면 그것은 윤리투자자들의 세계관 실현에 걸림돌이 된다. 또 그들의 가치관과 정면으로 충돌한다.

영국 감리교회의 CFB(Central Finance Board)의 기금, 프렌즈 프로비던트(Friend Provident), 팍 스 월드펀드(Pax World Fund) 등은 바로 이러한 윤리투자의 대표적인 펀드들이다. 이들은 기독교적 세계관의 바탕 위에 그 들의 투자원칙과 방법을 설정하고 있다.

미국에서 발생한 최대의 환경 재난은 아마도 엑손 발데즈(Exxon Valdez) 사건일 것이다. 1989년 초대형 유조선 엑손 발 데즈호는 알래스카 근해에서 좌초됐다. 약 1100만 갤론의 원유가 쏟아지면서 미국 역사상 최악의 환경 재난이 발생한 순간이다.

이 사건을 계기로 환경책임경제연합 (Coalition for Environmentally Responsible Economies, CERES)의 환경투자 10대 원 칙이 널리 퍼져 나갔다. 이 원칙은 생물의 보호, 천연자원의 지속가능한 사용, 폐기물 방출의 최소화, 에너지의 보존, 리스크 관 리, 안전한 제품과 서비스, 환경 복원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그 당시 엑손 주식을 600만주 정도 보유하고 있던 미국의 두 번째 대형펀드인 뉴욕시공무원연금펀드는 세레즈의 환경투자 원칙에 즉각 서명한 후, 엑손 측에 이 원칙에 근거한 주주결의안을 제출했다.

이는 환경위험의 관리 소홀이 곧 주주이익의 감소로 이어진 순간 투자자로서의 원칙 설정과 그에 근거한 주주행동주의를 실행한 것이다. 세레즈의 원칙은 이후 환경투자의 나침반이 되어 수많은 에코펀드들에게 투자의 항로를 제시하게 된다.

윤리투자의 투자방법론은 그들의 윤리관 내지 삶의 원칙과 일렬 정돈되어 있다. 환경투자의 방법론 역시 그들의 원칙과 신념에 상응하는 투자원칙을 정하고 투자를 실행함으로써 원칙과 방법간의 일관된 체계를 설정하고 있다.

이러한 과정에서 직면할 지 모를 투자수익률의 하락은 그들의 가치관 구현과 원칙 고수라는 심리적 보상을 통해 보전될 수 있다.

그 밖의 경우를 상정하여 보자. 만일 동물보호운동을 펼치는 재단이 그들의 여유자금으로 주식투자를 한다면 최소한 동물실험을 하는 기 업이나 모피회사 같은 곳에는 투자하지 않는다. 억압정권에 반대하는 사회단체가 투자한다면 그들은 억압정권국가에서 사업활동을 하는 기 업들에 투자하는 것에 대해 심사숙고할 것이다.

노동3권을 주장하는 단체에서는 노조 설립을 불허하는 기업에는 투자하지 않을 것이다. 만일 투자한다면 그것은 그들의 설립정신과 존재의 기반을 뒤흔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만일 노동단체가 무노조기업에 투자한다면 그 단체들의 원칙에 동조하여 지지를 보냈던 회원들은 후원을 철회하고 회비 납부를 중단할지 모른다. 따라서 그 단체들은 지속가능성에 종지부를 찍게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러나 문제는 위의 단체들처럼 구성원의 가치관 등이 단순 명쾌한 곳에서 발생하지 않는다. 즉 다양한 이해관계와 가치관, 사회의식, 투자관 등이 얽히고 설켜 도무지 공통분모를 식별하기 어려운 단체나 기관들에서 일어난다.

예컨대 연금펀드나 사회책임형 공모펀드처럼 복잡다기한 수익자나 가입자들로 구성된 곳에서는 특히 그렇다. 이들 중에는 반기독교적 세계 관을 가진 이들도, 환경부문을 비용으로 인식하는 사람들도, 모피코트 애호가도, 노조운동 반대론자도, 북한을 억압정권 이전에 같 은 민족으로 규정하는 인사들도, 그리고 이들과 대척점에 선 사람들도 제각각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사회책임투자를 실행하기 위해 ESG(환경, 사회, 지배구조) 규범이나 기준을 투자에 반영하게 되면 자칫 극단적인 이 해상충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동시에 '선관주의 의무'(Fiduciary Duty)나 '신중한 투자자의 원칙 '(Prudent Investor Rule)라는 간접투자의 핵심원칙을 위협할 수도 있다. 왜냐하면 비재무적 요소를 특정 입장에 서 해석하여 투자에 반영하면 자칫 투자수익률에 제한이 가해 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다른 입장의 구성원들이 반발할 것은 불 보듯 뻔하다. 여기서 사회책임투자 펀드의 운용자들은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이 진퇴양난의 돌파구는 무엇일까?

그 해답은 선문답처럼 들릴지 모를 아주 단순한 곳에 있다. 바로 민주적 절차의 토론과 합의를 거쳐 투자원칙과 가이드라인을 설정하고, 그것들과 투자방법을 일렬정돈 시킨 이후엔 그대로 실행하는 것이 그것이다.

이런 고민을 먼저 했기 때문일까? 우리보다 앞서 사회책임투자를 확대하고 있는 영국의 경우는 연금펀드의 운용자(Trustee)로하여 금 투자원칙(Statement of Investment Principles, SIP)을 정하여 발표하게 한다.

그리고 그 원칙 내에서 어느 정도로 ESG를 고려할 것인지, 어느 정도 수준으로 ESG 관련 안건에 대해 의결권을 행사할 것인지 를 포함시킨다. 따라서 사회책임투자의 운용자들은 이렇게 정해진 원칙과 가이드라인을 충실히 따르면 된다.

그러고 나면 사회책임투자 실행과정의 문제는 매우 복잡한 가치판단의 영역에서 원칙 이행 여부의 차원으로 격하되고 단순화될 수 있 다. 즉 선과 악, 윤리성과 비윤리성, 평등과 불평등, 정의와 부정의라는 매우 주관적 철학적 담론으로부터 원칙을 어떻게 충실히 따 랐느냐의 문제로 단순화될 수 있다는 말이다.

물론 우리나라로 돌아와보면 '원칙설정과 적용' 이란 말은 참 아득하게만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더군다나 변화무쌍한 증권시장에서 원칙 따로, 실행 따로에 익숙한 펀드 운영자들에게는 더욱 그렇다.

그러나 '원칙책임투자'는 곧 '사회책임투자'의 다른 이름이다. 어차피 이 세상에 지고의 단일한 절대적 가치가 존재하지 않는 한 사회책임투자의 운용자가 기댈 언덕은 주어진 원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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