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상이 갖는 섬뜩한 주술성과 호소력은 번식력을 재생산하기 때문에 그렇다. 이러한 주장이 가설이 아님은 역사를 되짚어보면 알 수 있 다. 그러나 우상은 제3자적 관점에서 더욱 선명히 보인다. 내재적으론 우상의 최면상태를 극복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따라서 문제 는 과거의 우상, 타자의 우상이 아니라 현재 우리를 둘러싼 우리들의 우상을 직시하는 것이다.
투자에도 우상은 존재한다. 기대와 현실의 차이가 크면 클수록 그곳은 우상의 소굴이 된다. 기대를 부풀리는 사회도 그것의 온상지 가 된다. 혹세무민의 양법(禳法)에 일희일비하며 마법의 신묘함에 취한다. 현실 가능한 목표보다는 유토피아적 몽상에 압도 당한 다. 규칙성보다는 불규칙적 일탈을 추구한다. 이러한 지점에서 투자의 이성과 합리는 설 자리를 잃어 버리기 십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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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상황에서 투기는 투자를 구축(驅逐) 한다. 슬그머니 투기와 투자가 동일시되기도 한다. 그러나 투기와 투자는 크게 다르다. 워 런 버핏의 스승인 벤자민 그레이엄(Benjamin Graham)은 말한다. "투자는 철저한 조사분석을 통하여 투자 원금의 안정성 이 보장되고 만족할만한 수익이 예상되는 대상에 자금을 투여하는 것이다. 이 외의 모든 활동은 투자가 아닌 바로 투기다"라고.
최근 국내의 유명 시장분석가가 곤혹을 치렀다. 그가 예측한 지수와 실제지수가 정반대로 움직였기 때문이다. 시장은 그를 용서하지 않 았다. 그는 불면의 날을 보낸다고 했고 마침내 예상지수를 수정했다. 족집게 점쟁이를 염원하는 시장의 기제 하에서 그는 더 이상 이 코노미스트에 머물 수 없는 듯 했다.
그렇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단기 시장지수에 대한 예측은 인간의 영역이 아니다. 삼라만상의 이치를 꿰뚫는 초인이 등장하지 않 는 한 그것은 불가능하다. 더군다나 분석 대상기간이 단기화될수록 불가능의 정도가 급격히 올라간다. 주가를 움직이는 변수가 복잡다기 할 뿐더러 예측불허이며 돌출적인 까닭이다.
흔히 이코노미스트들은 이러한 지수예측을 위해 모델링을 한다. 즉 주가지수에 영향을 미칠 법한 가능한 변수들을 추출하고 더 중요 한 것과 덜 중요한 것을 모아 모델을 설계한다. 이 모델은 간단하면서도 포괄적이어야 하고 무엇보다도 실제현상을 잘 설명하고 예측 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작업이 불가능한 이유는 경제변수들의 자기운동성 때문에 그렇다. 예컨대 신장수술을 하는 외과의사를 상상해 보자. 엑스레이 결 과 신장의 위치가 결장(結腸)으로부터 3cm 아래쯤에 위치한다는 것을 파악했다. 그런데 의사가 막 절개한 순간 신장이 슬그머니 위 치를 바꾸어 버렸다고 생각해보라! 이코노미스트나 시장전략가들의 고충은 바로 여기에 있다.
또 다시 주식투자 광풍의 시대가 도래했다. 경제와 금융의 패러다임이 바뀌었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현상이다.
그러나 이젠 좀 우상적 투기에서 이성적 투자로 전환되어야 한다. 단기 변동성에 일희일비하며 단기매매차익에 목숨을 거는 투기에서 길게 보고 뚜벅뚜벅 가는 투자로 바뀌어야 한다는 말이다.
우상의 시대를 단절하기 위해 극복해야 할 것이 많다. 무엇보다 증권회사가 양산하고 언론이 유포하며 사설 정보회사들이 전달하는 시황 전망, 매매전략, 단기지수 예측 등의 주술적 선동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이다. 그보다는 무미건조하지만 기업의 재무, 비재무적 가치 에 근거한 사회책임투자의 장기투자 문화에 흠뻑 빠져야 할 것이다. 이것이 전환시대의 투자논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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