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초등학교 때부터 시작해 현재에 이르기까지 줄곧 합창단 활동을 해왔다. 햇수로 30년이 훨씬 넘는다. 이런 내게 사람들은 합창 음악의 도사가 됐을 거라고 말한다. 그렇지만 그건 큰 오해다. 오히려 하면 할수록 어렵고, 부르면 부를수록 한계를 절감케 하는 것 이 바로 합창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단 한 가지 합창 잘 하는 법만은 분명히 알고 있다. 선문답 같지만 비법은 아주 단순한 데 있다. 즉 전체의 단원들이 각 자의 목소리로 조화를 꾀하는 것이다. 자신의 목소리가 돌출되어 전체를 지배하거나 혹은 자신이 속해 있는 파트를 주도하고 있지는 않 는지를 늘 살펴야 된다는 말이다.
이렇게 전체가 조화를 이루면 배음(倍音)의 법칙-사람의 목소리는 완전화음을 가능케 하는 순정율이고, 피아노나 관악기는 옥타브를 인 위적으로 반음씩 12등분한 평균율이기 때문에 완전화음이 불가하다-을 통해 합창단원들은 브렌딩의 극치에 도달하게 된다. 피아노반주 가 생략된 아카펠라는 바로 이러한 이유로 생겨났다.
따라서 탁월한 성악가가 없이 이러한 브렌딩의 법칙을 이해하는 아마추어들만이 모여도 최고 수준의 합창을 구현할 수 있다. 배음의 법 칙이 가세함으로 인해 소리의 시너지 효과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성악가가 있으면 소리로 전체를 제압하기 때문에 방해가 되 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투자에도 합창음악과 유사한 개념이 등장하고 있다. '보편적 소유주'(Universal Owner)가 그것이다. 이것은 지 난 2000년 미국 세인트 메리대학(Saint Mary's College)의 호우리(Hawley)와 윌리엄(William)교수 가 "수탁자 자본주의의 등장"(The Rise of Fiduciary Capitalism)이라는 책에서 제시한 개념이다.

이미지출처 : www.upenn.edu
기업의 소유권은 크게 3단계를 거치면서 발전해 오고 있다. 첫째가 창업자나 그 2,3세들이 소유하고 있는 형태다. 둘째로는 자본시 장의 발달을 통해 주주들이 분산되면서 소유와 경영이 분리된 구조다. 이 국면에서는 전문 경영인들이 주로 기업을 컨트롤 한다.
세 번째 단계는 주식의 소유권이 연금이나 뮤추얼펀드와 같은 수탁 기관들의 손에 집중되는 단계다. 미국이나 영국의 경우 연금펀드의 주식 보유비중은 자국 시장의 약 40%에 달한다.
이들 거대 펀드들은 다양한 포트폴리오를 보유한다. 또한 대부분의 연금펀드들은 벤치마크 인덱스를 추종하는 식의 종목 구성을 하고 있 다. 따라서 이들의 포트폴리오에는 전 업종의 다양한 종목들이 편입되어 있다. 이것은 거대 펀드의 수익률이 몇몇 종목들에만 의존하 는 것이 아니라 전 종목의 조화로운 수익률에 좌우된다는 사실을 뜻한다.
전 종목의 조화로운 수익률이란 바로 경제 전체의 지원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따라서 '보편적 소유주'들은 개별 종목 하나하나의 실적 도 평가하지만 그것들이 경제 전반에 미치는 영향도 아울러 평가해야 한다. 혹여 특정 보유 기업들이 부정적 외부화를 통해 이익을 취 한다면 그것은 전체로 보면 소탐대실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즉 개별종목의 외부화가 국민경제에 악영향을 끼칠 것이고 그것은 곧 다른 보유 종목들에게 도미노적 악영향을 끼칠 수도 있다. 결과적으로 펀드 전체의 수익률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가져 다 준다는 점을 늘 상기해야 한다.
영국의 대학연금펀드(USS)나 미국의 뉴욕시 은퇴연금(NYCERS)은 이러한 장대한 시각을 갖고 '보편적 소유주'의 철학을 실천하 는 대표적인 연금펀드들이다. 예컨대 유틸리티, 정유, 자동차, 항공산업처럼 이산화탄소를 많이 배출함으로써(부정적 외부화) 기후변화 의 원인을 제공하는 산업들을 보유하고 있다면 그들은 해당기업의 밸류에이션에서 이러한 측면을 반영한다.
한발 더 나가 이들 산업이 일으키는 기후변화로 인해 해수면 상승, 홍수, 가뭄, 기근, 허리케인, 쓰나미 같은 물리적 재난이 발생 하면 그것은 곧 생산시설과 생산력의 감소로 연결되어 국가 및 세계경제에 악영향을 일으킨다. 따라서 시장의 체계적 위험을 높일 수 도 있다. 그들은 이러한 부분까지 분석하여 필요하면 경영 관여도 실시한다.
'보편적 소유주'의 투자법은 앞서 말한 합창 잘하는 법과도 일맥상통한다. 한두 명의 스타플레이어보다는 코치의 손놀림을 잘 이해하는 다수의 팀원들이 전체의 운동력을 배가 시키는 스포츠의 원리에도 맞닿아 있다.
우리나라의 연금펀드가 이러한 장대한 원리를 이해하기까진 얼마나 많은 비용을 지불해야 할까? 모든 펀드 운용자들로 하여금 세계적 합 창단들이 즐비한 유럽 여러 나라의 합창콘서트를 매회 감상케 하여 브렌딩의 법칙을 깨닫게 할 수만 있다면, 항공료와 체류비, 티 켓 값을 지불할지언정 그것이 우리 미래세대의 부담을 덜어주는 가장 경제적인 방법이 아닐까 싶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