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8월 2일 일요일

앨 고어의 '또 다른 불편한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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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출처 : www.neoearly.net


'불편한 진실(An Inconvenient Truth).' 이 영화는 미국의 전 부통령 앨 고어(Al Gore)가 출연한 영화 다. 그는 이 영화에서 직접 제작한 '지구 온난화의 문제를 설명하는 슬라이드 쇼'를 통해 평범한 시민들에게 '전 지구적인 비상사태 '에 대해 놀라운 진실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는 말한다. "세상에는 듣기 싫은 진실이 있다. 진실을 알게 되면 그 사실을 인정해야 하고, 그 사실을 인정하면 자신이 변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우리 모두에게 꽤 불편한 일이다."

지금 전 인류, 지구에도 그러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 지구 온난화가 바로 그것이다. 어찌 보면 그것은 시한폭탄 같기도 하다. 과학 자들의 가설이 적중한다면 십여 년 내 지구의 기후 체계는 완전히 뒤바뀔 것이라고도 한다. 인류의 소비행태가 부추긴 이산화탄소의 증 가는 빙하를 녹이고, 플로리다, 상하이, 인도, 뉴욕 같은 대도시의 40% 이상을 물에 잠기게도 하고 네덜란드는 아예 지도에서 사 라지게 할 수도 있다.

'제너레이션 자산관리(Generation Asset Management).' 이 회사는 앨 고어가 그의 오랜 친구며 골드만삭스 의 CEO를 역임한 데이비드 블러드(David Blood)와 함께 2004년 4월 설립한 자산운용사다. 그는 자본시장에서도 무 슨 불편한 진실을 발견하기라도 한 것 일까?

나는 작년 10월 암스테르담에서 열렸던 UN GRI(Global Reporting Initiatives) 컨퍼런스에서 앨 고어 의 연설을 직접 들을 수 있는 행운을 얻었다. 그의 연설에서 나는 '또 다른 불편한 진실'을 발견한다. 그것은 '시장의 투기화' 와 '회계방식의 본질적 문제로 인한 비용의 외부성(Externality)' 문제로 요약해 볼 수 있다.

투기와 투자는 다르다. 사람들은 흔히 투기를 듣기 좋은 말로 '모멘텀투자'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는 '모멘텀 투자'를 원한다면 차 라리 라스베가스로 갈 것이라고 말한다. 미국에서 30여년전 뮤추얼펀드의 평균 주식 보유기간은 7년이다. 그런데 요즘 이 펀드들 은 보유주식을 11개월마다 100% 팔고 사는 회전율을 자랑한다. 이것은 '모멘텀 투자'라는 그럴듯한 말로 포장되어 있으나 시장 이 그만큼 투기화되고 있다는 점을 실증적으로 말해주는 것이다.

예컨대 기업이 풍력발전 설비투자를 한다면 그 투자에 대한 회임 기간은 최소 3년이다. 그런데 투자자들은 다음 분기만을 들여다 본 다. 이러한 투자자들의 행태는 매우 비정상적이다. 그런데 더욱 큰 문제는 비정상적인 요구에 기업이 장단과 박자를 맞추고 있다는 점 이다.

또한 현재의 회계방식을 살펴보자. 현재의 회계시스템은 제1차 및 2차 세계전쟁 사이인 1930년대 케인즈에 의해 주로 창안되었 다. 이 방식은 자본을 측정하는 데는 매우 정교하다. 그러나 자본재 이외의 것에 대해서는 어설프다. 자본재가 감가상각 되는데 비 해 그 외의 것들에는 그렇지도 못하다.

그 방식으론 노동을 측정하는 데도 많은 한계점들이 존재한다. 환경 측면도 매우 유감스럽다. 케인즈와 같은 거인이 이러한 오류를 범 한 것은 아마도 그가 식민지시대를 살았기 때문일 것이다. 왜냐하면 그 당시 유럽국가들은 식민지의 노동력과 자연자원을 거의 무한 한 공급의 대상으로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현재의 경제발전 모델이 가능한 한 많은 비용을 외부화시키려는 것은 어찌 보면 케인즈의 유산일지도 모른다. 외부성이란 기업이 창출 한 비용을 그 사회가 부담하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오랫동안 기업들은 외부화를 최대화함으로써 비용을 최소화하고 이익을 극대화하려 고 노력해왔다.

나는 최근 앨 고어의 연설을 메모한 노트를 다시 읽으면서 이런 생각을 해봤다. 우리 모두는 각자 나름의 불편한 진실을 갖고 있다 고. 흡연, 비만, 도박, 지나친 음주, 그리고 욕심과 거짓, 불성실과 교만 같은 것들도 그러한 범주에 속할지도 모른다. 그 궁극 적 폐해를 알지만 그것을 인정하고 바꾸기 위해서 지불해야 할 당장의 비용이 참 불편하고 부담스럽기 때문일 터다.

투자자들도 마찬가지다. 도박과 유사한 투기가 순간의 재미와 스릴을 가져다 주지만 그것이 결코 건전한 자산 축적으로 이어지지 못한다 는 엄연한 진실을 회피하면 안 된다. 진실을 끌어안으면 불편함이라는 비용만 지불하면 되지만 진실을 회피하면 재앙적 손실이 뒤따 를 수도 있는 것이 주식 투자이기 때문이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비용을 외부화하면 당장의 결산에는 우호적일지 모르지만 훗날 그것은 부메랑처럼 그들의 결산서에 치명적 흠집을 남 길 것이라는 진실에 눈감으면 안 된다. 문제는 미래의 불확실한 비용을 고려하여 현재의 확실한 이익의 유혹을 끊어내는 것이 다. 그 힘은 오직 양심의, 가늘고 고운 소리를 듣는 것이다.

사회책임투자, 변질과 변화 사이(기업의 지속가능성을 보는 두 가지 관점)

몇 달 전 외국계 컨설팅 회사에서 지속가능경영 컨설팅을 맡고 있는 한 컨설턴트와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대학에서 환경 분야 를 전공했고, 석사와 박사과정까지 기업의 지속가능한 발전에 대해 연구했다. 그는 내게 이런 이야기를 건넸다.

"저는 지금도 지속가능경영 컨설턴트라는 명함을 들고 다니지만, 요즘은 기업이 ESG(환경, 사회, 지배구조)측면만을 잘 한다고 해 서 과연 지속가능하게 발전할 수 있느냐에 대해 질문을 받으면 말문이 막히곤 합니다. 이보다는 기업의 지속가능성은 현금흐름 등 재무 측면과 매우 높은 상관성을 띠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왜냐하면 현금흐름이 막히면 기업이란 결코 지속가능할 수 없 기 때문이지요."

최근 들어 사회책임투자는 지속가능성 투자와 동의어로 통용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아마도 사회에 대한 책임을 다하는 기업들에 대 한 투자가 곧 지속 가능한 발전을 담보하는 투자일 것이라는 믿음에서 비롯됐을 것이다. 전통적인 “기업의 사회책임” 지지자들은 윤리 경영 측면을 일정부분 양보해온 반면, 환경론자들 중심의 “지속 가능한 발전”의 진영에서는 대거 사회적 가치와 지배구조를 도입하면 서 양자의 개념은 뒤섞이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진화과정은 과거에 진행형이었듯 현재에도 진행형이며 미래에도 그러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현대적 의미의 '기업 사회 책임'도 보다 실용적인 노선을 택하고 있으며 동시에 '지속가능한 발전'이라는 개념도 재무적 중요성을 더욱 수용하는 추세를 띤 다. 더군다나 이러한 진화는 전 세계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사회책임투자의 주류화 현상과 맞물리며 빠른 속도로 전개되고 있다.

또한 이러한 진화의 모멘텀은 비단 사회책임투자 그룹만이 아니고 기업 사회책임이나 지속가능성을 고루한 담론으로 폄훼하던 다국적 투자 은행들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아마도 이들 투자은행들은 빠르게 성장하는 사회책임투자 시장을 좌시할 수만은 없다는 경영적 판단과 기업 의 비재무적 위험과 기회요인들이 점차 기업의 경영실적과 긴밀하게 맞물리는 현상들을 외면할 수만은 없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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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출처 : www2.goldmansachs.com


최근 골드만삭스(Goldman Sachs)와 씨티그룹(Citigroup)은 몇 편의 사회책임투자 보고서를 냈다. 그 내용들을 훑어 보면 아주 뚜렷한 공통점을 발견하게 된다. 두 투자은행들 공히 "지속가능성 투자는 곧 ESG를 분석해서 이를 투자에 반영하는 것이 지만 더욱 중요한 점은 이들 ESG분석 결과를 어떻게 전통적인 재무 및 투자분석과 통합시킬 수 있느냐 하는 문제"라고 보고 관심 을 집중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투자은행을 대표하는 골드만삭스는 지난 2004년 지속가능성 분석틀을 개발한 후 2004년과 2005년 에너지 산업을 분석했다. 지 난해 초에는 유럽의 미디어산업 그리고 하반기에는 동일한 틀로 광업 및 철강 산업을 분석한 바 있다. 이 분석 자료들을 살펴보면 기 업의 지속 가능성을 크게 봐서 세 가지 측면(현금흐름, 산업의 특성, ESG)에서 접근한 후에 이들 각각의 분석결과를 통합시켜 서 골고루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기업들을 분류해냈다.

부연하자면 기업의 지속가능성이란 첫째로 투자한 자본 대비 현금 회수가 얼마나 원활히 이뤄지고 있느냐를 분석하고, 둘째로는 광업 과 철강의 산업적 특징적 요소들을 추출하고 그러한 요소들에 대해 전략적으로 적절히 대응하고 있느냐를 평가하며 마지막으로 그들이 고 안한 50개의 ESG 기준들로 기업들을 평가한다. 따라서 위 세 가지 부문들 중에서 특정부문만이 아니라 전 부문에서 균형 있는 점 수를 받고 있는 기업들을 골라 매수 추천을 하고 있는 것이다.

올 초에 나온 씨티그룹의 '강을 건너며(Crossing the River)'라는 사회책임투자 보고서는 새로운 스크리닝 방식을 소개 하고 있다. 이 보고서에서는 기존의 전통적인 7가지 접근방법들 외에 '재무 가중 업종 최고기업(Financially- weighted Best-in-Class)' 접근법이 바로 그것이다. 기존의 업종 최고기업(Best-in-Class)방식은 동료그 룹들 중에서 순수하게 ESG 측면의 최고기업들을 판별하여 투자종목에 편입하는 방식이라면 새로운 방식은 기업실적과 밀접하다고 판단되 는 ESG 항목들에 가중치를 부여한 후 업종 최고기업들을 골라내는 방법이다.

씨티그룹의 분석가들은 재무적으로 관련성이 높은 항목들을 더욱 중요하게 판단한다. 예컨대 대형연소공장 가동여부, 카본 트레이딩 수 준, 핵폐기물 처리방법 등과 같은 항목들은 기업의 재무적 리스크와 직접적으로 연관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이 항목들에 대해 높 은 가중치를 부여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노력은 아마도 순수한 업종 최고기업 접근방식이 상대적 투자수익을 높이는데 있어서 미흡하 다는 나름의 판단에서 출발한 것으로 보인다.

나는 이러한 저간의 변화를 바라보면서 몇 가지 궁금증을 갖게 된다. 과연 '지속가능성'이란 개념이 환경론자들이나 기업의 사회적 책 임(CSR) 운동 진영의 전유물일 수 있을까 의문스럽다. 또, 현대적 의미의 재무적 측면을 강조하는 지속가능성에 대한 개념 변화 가 과연 바람직한 발전의 과정인가 아니면 그 전통적 지속가능성의 순수성을 훼손하는 변질의 과정인가 하는 것도 궁금하다.

물론 이 물음에 대한 답은 바라보는 시각이나 이해관계에 따라서 다를 수 있다. 그러나 이 문제의 논의를 전개함에 있어서 실용주의적 입장이나 원칙 주의적 입장이나 공통적으로 유념해야 할 사실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사회책임투자도 투자인 이상 투자의 근본적 목적은 시장의 최적 수익률을 추구해야 한다는 점이고, 둘째는 기업과 사회와의 관계가 서로 샅바싸움을 하듯 상호 대립적인 것이 아니라 보완적인 관계로 크게 변모하고 있다는 점이다.

원형을 깨면 흔히 그것은 ‘변질’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원형을 보존하며 변화하는 시대정신과 환경을 적절히 수용하면 그것은 ‘변화’ 가 된다. 나는 앞서 말한 지속가능 컨설턴트의 고민이나 두 투자은행들의 보고서에서 이들이 사회 책임성의 관점에만 매몰된 것이 아니 라 기업의 생래적 특성을 이해하고 그것을 적극적으로 사회성의 원형에 접목시키려는 바람직한 변화의 모습을 읽게 된다.

은행의 사회책임이란?(은행의 사모펀드식의 경영을 비판하며)


지난 2월 10일자 영국의 이코노미트 誌는 '위험한 투자자(Caveat Investor)'라는 제목으로 사모펀드(Private Equity Fund)에 대해 다음과 같은 비판적 글을 실은 바 있다.

"실적이 안 좋은 기업을 그냥 사라. 직원들을 자르고, 부채를 줄이고 경영진에게 과도한 인센티브를 제공하라. 그렇게 4,5년을 요 리한 후 이익의 향연을 벌여라. 이것이 바로 사모펀드 그룹들의 요리법(Recipe)이다. 그들은 메꾸기떼와 유사하다. 그들의 철학 이란 단지 '기업을 사라, 그 옷을 벗겨라, 그리고 먹고 튀어라'로 요약될 수 있을 뿐이다."

사모펀드는 철저히 영미 식 자본주의의 산물이다. 영미 식의 핵심은 단순화하자면 전주(錢主)이익(주주 이익)의 극대화다. 따라서 그 들의 손익계산서는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보텀라인(Bottom Line, 결산)의 숫자를 최대화시키는 것이다. 즉, 잘 포장해서 소 비자에겐 최대 부담을 지우고, 잘 달래서 협력업체와 종업원에겐 최소 부담을 지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사모펀드 식의 경영전략이 된 다.

최근 국내 은행들에 대한 비판 여론이 비등하다. 국내 은행들이 과대배당을 하고 과다한 수익을 거둬들이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 나 그 비판의 출발점을 찾아보면 은행들이 지나치게 영미 식 자본주의의 '단기 주주이익 중심의 함정'에 빠져 있음을 경고하고 있 는 데에 있다. 실상도 그러할까 궁금해진다.

2006년 기준 5대 은행(국민, 외환, 신한, 하나, 우리)의 단순평균 배당성향은 약 34%로서 글로벌 상업은행들의 50%를 하 회하고 있다. 따라서 국내 은행의 과대배당 지적은 적정주주 환원정책의 관점이라기보다는 저배당을 미덕으로 삼았던 개발 성장의 논리거 나, 국내 은행들의 대주주인 외국인들에 대한 적개심에서 기인한 듯 보인다. 미국계 사모펀드가 대주주이자 경영자인 외환은행의 경 우 64%의 최대 배당 성향을 나타낸 것이 그 방증이다.

그러나 국내은행의 수익 구조를 뜯어보면 문제가 좀 복잡해진다. 금융연구원의 최근 자료에 의하면 국내은행의 '이자이익/총이익' 비율 은 87%다. 이는 단연코 OECD국가 중 일본을 제외하곤 으뜸이다. 핀란드의 41%, 프랑스의 42%, 캐나다의 51%, 스웨덴 의 52%, 영국의 54%와 대별된다. 부연하면 국내 은행들은 해외 선진은행들에 비해 그저 예대마진만을 취한 단순노동을 통해 돈 을 벌고 있는 것으로 들어난 셈이다.

그렇다면 이자이익의 발생원천인 대출구조는 어떠한가? 삼성경제연구소의 2006년 자료에 따르면 국내은행의 '기업대출/원화대출' 비율 은 90년대 초반 40%에서 2004년 말에는 11%로 하락한 반면 '가계대출/원화대출'은 거꾸로 90년대 초반 10%미만에 서 2002년부터는 절반을 넘어섰으며 2005년 말에는 56.9%로 급상승했다. 금액으론 약 260조원 규모다.

따라서 대출의 내용도 기업대출보다는 상대적으로 가계대출(부동산담보대출)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다. 이 대출금의 상당액은 지난 수년간 부동산시장 과열의 불쏘시개 역할을 했음은 물론이다.

여하튼 이러한 구조 하의 단순 예대마진을 통해 지난 2년간 국내 은행들은 순이익의 향연을 벌이고 있다. 지난해 '순익 1조 클럽'에 가입한 상장회사 15곳 중 무려 6곳이 은행이라고 하니 말이다.

이러한 상황 하에서 만일 장기투자자인 사회책임투자자들이 국내은행의 주요주주로 자리잡았다면 가장 먼저 제기할 의문은 무엇일까? 그것 은 국내은행들의 부동산 담보대출에 기댄 수익구조가 과연 지속 가능할 수 있을지 여부로 모아질 것이다. 논쟁은 다음의 두 가지로 요 약될 것이다.

그 첫째는 은행의 이익구조가 다양한 영업기반의 창출과 원가절감, 신상품의 개발, 블루오션적 시장창출에 의한 것인지, 아니면 부동 산 상승에 기대거나 그것을 직간접적으로 부추긴 결과에 따른 주기적(cyclical) 시황에 따른 이익인지를 판별할 필요가 있다.

전자의 이익이 지속 가능한 이익이라면 후자의 이익은 지속 불가능한 이익에 머무를 가능성이 매우 높다. 따라서 지속 불가능한 이익 에 대해서는 일정한 디스카운트를 하거나 리스크 프리미엄을 얻을 필요가 있다. 사회책임투자자로서의 재평가작업이 뒤따르는 것이다.

왜냐하면 여기에는 확실한 교훈적 사례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지난 80년대 중반 미국의 부동산 관련 대출이 부실화되면서 94년까 지 약 2500여 개의 은행들이(저축대부조합 포함) 파산한 사실과 90년대 일본의 부동산 버블이 꺼지면서 약 10년간 130여 개 의 금융기관들이 망해 나간 기억들이 바로 그것이다.

둘째로 은행의 생래적 특성에 주목한다. 은행은 공공성이라는 제약조건 속에서 상업성을 극대화시키는 조직이다. 공공성이란 은행의 지급 결제 기능, 통화 신용정책의 경로로서의 기능, 기업구조조정기능이라는 경제의 중추 인프라적 특성 때문이다. 이 점 때문에 지 난 IMF 위기 때 혈세를 쏟아 부어 은행을 살려낸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은행의 수익성 추구는 이 점을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된 다. 살려줬더니 칼 들이대는 격이 되어서는 더더욱 곤란하다.

은행은 공공적 특성에 걸맞게 사회의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이익을 동시에 고려해야 한다. 그렇지 아니하고, 사모펀드 식의 단기 주주 이익에 올인하는 듯 보이면 제일 먼저 고객들이 떠날 것이고 그 다음 지역사회가 외면할 것이다. 단순 담보대출업자들에게 사회와 국민 들이 지속 가능하게 관심과 애정 그리고 지원을 보낼 하등의 이유는 없다.

모리와 샘의 투자 이야기

모리(Morley)와 샘(SAM)은 유럽에서 사회책임투자를 대표하는 펀드운용사들이다. 오늘은 오랜 역사를 갖고 있는 이들 두 펀드 매니저들이 어떠한 방식으로 사회책임투자(SRI)를 실행하며 또 무슨 문제를 놓고 고민하고 있는가를 생각하며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 을 찾아 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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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출처 : www.omegacontracts.com


모리는 영국 최대 보험회사인 아비바(Aviva)의 자산을 운용하는 회사로, 현재 그 운용 총액은 우리 돈으로 환산하여 약 220조 원에 달한다. 모리는 지난 2000년부터 약 1조5천억원을 사회책임투자 방식으로 운용하고 있으며, 현재 이 펀드의 운용성과는 여 타 주류 벤치마크 인덱스들의 수익률을 월등히 넘어서고 있다.

이러한 성과의 이면에서 이들은 어떠한 노력들을 해온 것일까? 우선 모리는 "장기적으로 보면 기업의 가치는 '비재무적인 요소들' 에 의해 더욱 영향을 받는다"라는 투자철학을 밑바탕에 깔고 있다. 따라서 이들은 시장의 단기적 변동성(Volatility)으로부 터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기업의 지속가능성을 냉정하게 평가할 수 있는 방법 찾기에 몰두해왔다.

그 결과물로서 이들은 최근 정교한 'SRI 매트릭스'를 개발하게 된다. 이 매트릭스는 가로, 세로 각각 5개 셀(cell) 씩 총 25개의 셀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에 따라 분석대상 기업들의 생산품과 서비스의 지속 가능성, 경영진의 전략 및 정책 같 은 지속가능성이 각각 평가된다. 그리고 수치화된 평가 결과에 따라 투자 대상기업들은 25개의 칸에 각각 위치하게 된다. 이 중 상 위 50% 이상 기업들이 주로 투자 대상 기업의 리스트에 오르게 된다.

그리고 각각의 셀은 서로 다른 할증 및 할인율을 갖고 있다. 즉, 상위 50%에 속하는 기업들은 재무분석에 의한 목표가격에 각 각 다른 할증율이 적용되고, 반면 하위 50%의 기업들이 포트폴리오에 더해진다면 일정한 할인율이 적용된다. 즉, ESG(환경,사 회,지배구조) 위험과 기회에 잘 포지셔닝된 기업들에겐 당근을, 그렇지 않은 기업들에겐 채찍을 가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모리는 ESG야말로 전통적 투자자들로부터 무시당하고 있는 이슈이기에 더욱 중요한 요소라고 강조한다. 투자의 성공이란 환영 받는 다 수의 의견이 아니라 홀대 받는 소수의 의견에서 서서히 피어나는 것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남들이 들여 다 보지는 않으나 매우 중요한 비관습적 지표들이 바로 ESG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것들에 깊이 천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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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출처 : www.terna.it


샘(Sustainable Asset Management)은 우리 돈으로 약 160조원 가량을 투자하는 스위스 취리히에 본부를 두 고 있는 SRI 전문 펀드매니저이다. 샘이 정의 내리는 사회책임투자란 "장기적인 주주가치를 창출하는 것"이다. 이것은 곧 그들 의 이름처럼 지속가능한 가치인 것이다.

그렇다면 이들은 어떻게 그들의 투자방식을 차별화하면서 투자 가치를 창출하고 있는 것일까? 우선 이들은 지속가능성 측면에서 동료기업 들을 이끌고 있는 선두기업들을 판별하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여기서 찾아낸 기업의 지속 가능성 요소가 기업의 본질가치를 결정하는 잉 여현금흐름(Free Cash Flow)과 가중평균자본비용(Weighted Average Cost of Capital)에 어느 정도 의 영향을 끼치는가를 정교하게 분석해낸다.

이러한 과정에서 이들은 샘의 지속가능성 평가 지표를 만들었다. 이 지표는 또한 다우존스 지속가능성 지수 (Dow Jones Sustainability Index)의 편입 기업을 결정하는 척도로도 활용되고 있다. 여하튼 이들은 위의 지 표로 평가된 결과가 기업의 본질가치에 어떻게 연결되어 있고 어떠한 상관성을 갖고 있는지를 분석하기 위한 프레임워크를 개발한 것이 다.

이것이 이름하여 '샘의 지속 가능성과 주주 가치의 전달체계(Sustainability and Shareholder Value)'이 다. 여기서 샘은 지속 가능성 지표들(브랜드 관리능력, 인적자원 관리, 조직내의 학습, 탄소 위험 관리, 기업 지배구 조, IR 등)과 기업의 주주가치(잉여현금흐름과 WACC)사이에 6개의 매개변수들을 설정한다. 즉 매출액, 비용, 세율, 투자 액, 자본구조, 리스크 프리미엄 등이 바로 그것들이다.

예컨대, 브랜드 관리를 잘하면 그것은 매출액에 일정한 영향을 끼치고 매출액은 기업의 잉여현금흐름과 직접 관련된다. 또한 기업지배구 조는 기업의 리스크 프리미엄을 낮춤으로써 결과적으로 기업의 자금 조달 코스트를 떨어뜨릴 수 있다고 본다. 이렇듯 기업의 지속가능성 은 매개변수들에 의해 기업의 주주가치와 매우 긴밀하게 연결되어 호응하고 있다.

최근 우리나라의 기관투자자들도 사회책임투자에 대해 점차 관심을 갖는 듯 보인다. 시중에 다양한 SRI펀드가 등장하고 있는 것을 보 면 더욱 그런 것 같다. 이는 펀드 투자 시대를 맞아, 다양성의 측면에서 매우 고무적인 현상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진짜 승부는 지 금부터라고 생각한다.

이제까지의 SRI펀드들이 막연한 선의에 기댔다면 앞으로는 그러한 선의 이상의 초과수익이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을 투자의 결과로 입 증해 나갈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착한 기업의 기준이 무엇이며 그 기준으로 얻어진 결과들을 어떻게 평가하여 그것을 전통적인 투자분 석과 연결시킬 수 있는 지에 대한 다양한 투자모델의 개발이 시급하다. 모리처럼 샘처럼 창의적인 분석 프레임워크가 나오길 기대해본 다.

투자시장의 패스트푸드와 가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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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출처 : blog.syracuse.com


맥도날드는 패스트푸드를 대표하는 다국적 회사다. 1948년 설립된 이 회사는 전 세계인들에게 아주 편리한 먹거리를 제공하면서 거대 한 기업으로 성장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이 간편한 먹거리 상품에 대한 시비와 논쟁이 끊이질 않는다. 대체 왜 그럴까?

우선, 패스트푸드는 누구나 싸고 간편하게 얻을 수 있다. 매장에서 주문 후 계산을 하고 나면 곧바로 햄버거가 나온다. 식사 후 남 은 음식을 쓰레기통에 넣고 나오면 한 끼를 거뜬하게 해결할 수 있다. 외견상 여기까지는 하등의 문제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두 번째 특징을 살펴보면 좀 복잡해진다. 즉, 이 패스트푸드는 싼 맛에 자주 이용하다 보면 강한 중독성을 띠게 된다 는 점 때문에 그렇다. 2003년 7월 영국의 '더 타임스'는 미국 위스콘신 대학 연구팀의 보고서를 인용해 "패스트푸드를 장기 섭 취한 쥐들에게 그것의 공급을 중단하면 마약에 중독된 쥐에게 마약을 끊었을 때와 유사한 증상을 나타난다"고 보도했다.

또, 패스트푸트는 싸고 입에 달다고 자주 먹게 되면 비만을 불러 올 수 있다. 한 조사자료에 따르면 1971년 일본에 패스트푸드 가 상륙한 이래 80년대 중반까지 그 판매량이 2배 증가했고, 이에 따라 어린아이들의 비만율도 2배 이상 증가했다고 한다. 패스트 푸드 이외의 다른 요인들을 고려하더라도 상당히 유의성 있는 지표다.

그런데, 이러한 패스트푸드화가 주식 시장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온라인 주식거래가 바로 그것이다. 증권선물거래소의 자료에 따르 면 1997년 첫 시행 이래 이 시스템을 통한 주식 거래비중은 코스피, 코스닥을 합쳐 1998년 1월 1.3%에서 2006년 각 각 40%, 77%로 높아졌다. 이 수치는 전 세계를 통틀어 최고를 자랑한다.

증권회사 객장에 굳이 나가지 않아도 안방이나 사무실에 앉아서 상대적으로 싼 수수료를 지불하며 매매를 가능하게 한다는 점에서 이 시 스템은 분명 장점이 있다. 즉 싸고 간편하다는 점에서 패스트푸드의 첫 번째 조건을 충족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온라인 거래는 중독성이 강하다. 온라인을 통해 이뤄지는 각종 게임이나 도박처럼 이것 역시 한번 맛을 들이면 쉽게 떼기가 어 렵다. 만일 매매를 통해 단기차익을 얻고 절묘하게 손실을 피했다면 더욱 그럴 것이다. 그 쾌감은 그 어떤 도박의 그것 이상이 다. 이 중독자들은 주식투자를 타이밍의 예술이라며 각종 차트와 복잡한 파동이론들을 경전처럼 떠받들며 빠져들어간다.

또, 싸고 간편하다는 이유로 온라인 주식거래를 지속하다 보면 거래비용을 자주 치르게 된다.사고 팔 때 지불하는 수수료와 팔 때 내는 거래세가 바로 그것이다. 많은 비용은 자산 증식에 걸림돌이다.

온라인 주식 거래비용은 일견, 객장을 통한 거래비용보다 싼 듯 보인다. 하지만 매매 회수가 잦아지면 어느새 비용은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르듯 시나브로 커진다.

게다가 일단 온라인에 접속이 되면 세상 온갖 뉴스와 마주하게 된다. 변화무쌍한 시세의 흐름에 노출된다. 이 지경이 되면 뉴스와 시세의 변덕스러움에 갈피를 못 잡고 매매를 통해 위험과 기회를 컨트롤하려는 유인을 떨치기가 힘들다.

하지만 자기 생각처럼 위험을 회피하고 기회를 포착하기란 쉽지 않다. 그보다는 엇박자를 타게 될 가능성이 더 높다. 즉, 잦은 매매 가 거꾸로 위험을 키우고 기회를 줄이는 매매를 반복해 일으킬 수 있다. 이러한 상황이 자꾸 벌어지면 투자의 손실은 불 보듯 뻔하 게 된다.

우리는 우리 아이들에게 패스트푸드를 권하지 않는다. 아주 가끔이라면 모르지만 허구 헌 날 이 음식을 아이들에게 권할 부모는 없 다. 그보다는 집에서 어머니가 손수 만든 가정식을 권할 것이다. 비록 늘상 접하는 것이라 맛은 밋밋할지라도, 길게 보면 이 가정식 이 우리 아이들을 더욱 튼실하게 성장시킬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투자의 '가정식 백반'은 없을까? 주식시장의 변덕스러움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각종 뉴스매체의 혼란으로 인해 우리의 일상 이 방해 받지 않는 그런 투자는 없을까? 요즘 유행하는 해외펀드처럼 투기욕구를 만족시키진 못하지만 길게 봐서 우리에게 유익 이 될 것 같은 그런 투자는 없을까?

나는 사회책임투자야말로 그런 조건들을 두루 갖추고 있다고 믿는다. 사회책임투자는 기업이익의 원천을 따져보면서 투자하는 것이기 때문 에 더욱 그렇다. 외생변수로 인한 일과적 이익, 단기 호재로 인한 단발성 이익, 특정 이해관계자의 희생 위에 얻어진 이익, 반사회 적 반환경적 반윤리적 상행위로 얻어진 이익, 투기적 거래로 계상된 이익은 지속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언젠가 부메랑처럼 기업에게 다 시 코스트인(Cost-In)될 것이라고 믿는 까닭이다.

패스트푸드식 투자를 일삼는 이들에게 나는 아담 스미스(Adam Smith)가 그 유명한 '국부론'에서 제기한 다음과 같은 경고문구를 전해주고 싶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천박한 효용'이라는 장신구 위에 돈을 진열해놓음으로써 그들 스스로를 망가뜨리고 있는가? (How many people ruin themselves by laying out money on trinkets of frivolous utility?)"

칼아이칸과 현대차 노조 문제의 공통점

언젠가 '쾌도난마 한국경제'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다. 그 책에서는 낯익은 두 명의 학자들이 한국경제 전반을 놓고 격정적인 토론 을 벌이고 있었다. 그 중에서도 지금껏 생생히 기억되는 내용은 바로 주주자본주의에 대한 성토와 우려의 목소리였다.

즉, 주주자본주의가 확대되면 자연스레 배당률이 올라가고 기업 입장에서는 투자할 돈이 그만큼 줄어들게 된다는 것이다. 또한 주식시장 이 요구하는 높은 투자수익률을 의식하게 되면 섣불리 투자에 나설 수도 없게 된다. 결과적으로 투자율 저하로 인한 저성장의 악순 환 고리가 더욱 고착된다는 내용이었다.

작년엔 이러한 우려의 목소리를 입증하는 듯한 사건이 벌어졌다. 바로 칼아이칸 연합군의 KT&G에 대한 주주 행동주의였 다. 물론 적극적인 관여 전략을 통해 기업가치를 제고하고자 하는 그들의 시도 자체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칼아이칸 측 이 제시한 요구사항들이 얼마나 장기적 기업가치에 부합하는 내용인가에 대해서는 좀 의아스러운 부분이 있었다.

그 중에서도 배당에 대한 그들의 요구는 더욱 그랬다. KT&G는 지난 2002년부터 2005년까지 평균적으로 약 50% 가 까운 배당성향을 나타내고 있는데, 이는 세계적인 담배회사들의 배당성향인 50~68%의 범주에서 벗어나는 수준은 아니었다. 오히 려 지난 4년 동안 KT&G의 평균 주식 소각률이 6.6%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전체적인 주주 환원 정책에 있어서 큰 문제점 이 눈에 띠지는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칼아이칸 측은 작년 12월 5일, 분위기만 한껏 달궈 놓고 시세차익을 챙긴 채 떠나갔다. 결과적으로 그들의 과도 한 배당요구는 단기 투자를 염두에 둔 곶감 빼먹기 시도로 판명된 셈이다. 주주가치를 주장하는 듯했지만 내심 그들은 단기 기업가치 를 한껏 올려 놓고 이익을 챙기려는 단기투자자의 전형을 우리에게 보여줬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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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출처 : news.khan.co.kr


현대자동차가 새해 벽두부터 뉴스의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회사의 성과급 지급에 불만을 품은 노조가 시무식에서부터 봉기를 일으킨 것이 다. 분명 폭력은 문제지만 지금 이 자리에서 국외자 수준의 정보를 갖고 가타부타 논하는 것은 조금 조심스럽다. 왜냐하면 현대차 노 사문제는 꽤나 구조적이고, 그 뿌리가 깊이 뒤엉켜있는 까닭에 문제의 근인(根因)을 모르고 특정한 입장을 취한다는 것이 자칫 경솔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다만 사회책임투자자의 입장에서 이 문제를 바라본다면, 앞서 쾌도난마의 두 학자들처럼 비슷한 유형의 염려를 떨치기가 힘들다. 두 학 자들이 주주자본주의의 폐해인 기업경영의 단기화를 지적하고 염려했듯이, 사회책임투자자들에게 현대차 노사부문의 문제는 디스카운트하거 나, 심한 경우 네거티브 스크리닝을 해야 할 측면들이 눈에 띄는 까닭이다.

왜냐하면 기업경영을 일컬어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이익을 균형 있게 저글링(Juggling)하는 것이라고 본다면, 현대차의 경우 는 기업을 둘러싸고 있는 주주, 고객, 정부, 지역사회, 협력업체, 종업원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들 중에서 '종업원 부문'의 위험요 소가 지나치게 돌출적이고 그에 따른 불확실성의 위험이 매우 높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이는 마치 저글링에 있어서 어느 공이든 한 개의 공이 지나치게 무거우면 공의 회전이 오래 지속될 수 없는 이치와 다름 아니다. 다 시 말하자면 악순환의 시작은 어느 이해관계자 측면에서든 발생할 수 있고 그것은 앞서의 두 학자들이 지적했던 '단기 주주이익'에서뿐 만 아니고 '단기 종업원이익'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예컨대, '단기 주주이익'에서 과대배당, 성장동력의 쇄진, 주가의 하락, 자금 조달의 어려움, 현금 흐름의 악화, 성장의 저하라는 악순환 고리를 예상할 수 있듯이, '단기 종업원이익'에서도 다음의 악순환을 상정해 볼 수도 있다.

파업을 밥 먹는 듯 하는 노조, 무원칙으로 허둥대는 경영진, 그로 인한 생산대수의 저하, 출고일의 지연, 소비자들 불이익의 빈번 한 발생, 소비자들의 불매운동, 단가 인하를 통한 협력업체들에게 부담 떠안기기, 그로 인한 협력업체들의 경영 위축, 실적의 악 화 같은 순환이 그러하다.

사회책임투자는 전 부문을 골고루 바라보며 투자하는 것이다. 기업의 다양한 이해관계자 이익의 순환구조를 따져서 그 내부에 병목이 존 재한다면 그것을 기업분석에 반영하는 투자다. 따라서 칼아이칸처럼 단기주주이익에 올인하는 투자자에게도, 현대차처럼 종업원의 단기성과 급에 목을 매는 노조에게도 사회책임투자자들은 소리칠 것이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이며 중용의 도를 지키라고.

국제적 단기투기자본의 폐해와 기업 이해관계자의 님비현상이라는 두 가지 난마를 단칼에 베어낼 수 있는 한국경제의 쾌도난마는 다름아닌 사회책임투자가 아닐까 싶다.

공존과 상생의 바다, 사회책임투자

나이 마흔을 훌쩍 넘기고 시작했던 영국 MBA과정은 내겐 그리 녹록하지 않았다. 넘기 힘든 벽들이 참 많았다. 무엇보다 유럽 중심적 문화와 생각, 언어의 차이를 이해하고 극복하는 일이 생각보다 간단치 않았다.

그러나 소득도 많았다. 그 중에 가장 큰 소득을 들라면 나는 단연코 '다양성을 존중해 주는 법'을 꼽고 싶다.

강의실 안이건 밖이건 특정 이슈에 대해 논의할 때면 늘 격론이 벌어졌다. 다양한 가정들, 예기치 못한 전제의 재설정, 다양한 문화 와 관습에 대한 존중과 냉철한 비판들, 끊임없이 쏟아지는 질문들로 인해 캠퍼스 안은 늘 시끄럽고 북적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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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출처 : business.uwyo.edu


예컨대 수업시간 중에 교수가 특정 주제를 던진다. 그러면 너나 할 것 없이 일어나 각자의 관점에서 의견을 말한다. 서로의 다른 관점들이 부딪힌다. 일견 토론은 서너 명이 뒤엉킨 패싸움의 형국으로 변하는 듯했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싸움이 아니었다. 단지 생각과 관점의 교환시장에서 벌어지는 시끄러운 흥정 같았다. 마치 성업하는 시장이 요란스 럽듯 그것은 서로에게 더 큰 공동이익을 위해 어느 만큼 내 이익을 포기하고 상대의 이익을 수용할 수 있는가를 냉정하게 따져보는 과 정에 불과했다.

최근 나는 사회책임투자(SRI)에 관심이 있는 여러 사람들을 만나고 있다. 그들은 다양한 입장에 처한 사람들이기도 하다. 시민단체에서부터 학계, 투자자에서부터 기업체 인사들까지 망라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들을 만나면서 나는 또 한번 사회책임투자의 다양성에 대해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어떤 사람들은 '사회책임'을 일컬어 '지속가능 성'이라고 한다. '사회책임'이라는 용어가 자칫 기업들에게 부담이 될지도 모른다는 염려 때문이다. 따라서 '사회책임투자'는 곧 ' 지속가능 책임투자'로 바꿔 사용되어야 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다른 사람들은 '지속가능성'은 환경론자들의 이미지를 풍기므로 부담스럽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래서 그들은 '사회책임'을 그대로 사용 하자고 말한다. 기업이 아무리 경제적 계약 단위라고 하더라도 사회 내에 실재한다면 협의건 광의건 어떤 식으로라도 사회적 책임을 다 해야 한다는 것이 그들의 논거일 터다.

사회책임투자의 ESG(환경, 사회, 지배구조) 기준에서도 동상이몽을 발견하게 된다. 환경이라는 같은 배에서도 저마다 다른 이해관계 자들이 다른 꿈을 꾼다. 시민단체들은 기업들에게 상당히 엄격한 잣대를 요구하는 반면 기업들은 시민단체들이 너무 규범적이고 명분 에 치우친 채 기업 현실을 잘 모른다고 말한다.

노동 문제의 이해관계자들은 사회책임투자가 기업의 종업원 관련 정책 같은 이슈에 더욱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말한다. 반면 기업 관계자들에게 이 문제는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을 둘러싼 문제 중 하나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소비자 문제로 가도 비슷한 논의가 전개된다. 소비자 단체는, 소비자는 구매를 통하여 기업에게 자금을 유입시켜주는 가장 중요한 이해 관계자라고 일갈한다. 지배구조 관련 단체는 CEO와 이사회 의장은 분리되어야 하고, 사외이사의 수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고 말한 다.

반면, 기업은 이 모든 문제는 기업의 치열한 경쟁현실과 관련 지어 생각해야 한다고 반박한다. 투자자들 내부에도 다양한 혼란이 벌어진다.

이것이 곧 사회책임투자다. 네거티브 스크리닝을 한다면 이런 기준으로 해야 한다. 관여 전략을 실행에 옮기려면 이러한 원칙들을 세워 야 한다. ESG 분석과 전통적 재무분석을 통합하기 위해서는 이 정도는 해야 정답이다 등등 참으로 많은 목소리들이 존재하는 것 도 사실이다.

나는 앞서 제기된 다양한 시각들에 대해 결론적 의견을 제시할 만한 입장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만 그러한 다양하고 첨예한 '다름' 이 결코 '틀림'이 아니기에 서로가 서로에게 귀를 열고 가슴을 연다면 그러한 다양성은 이제 막 강 상류를 출발한 사회책임투자라 는 물줄기를 이끄는 추동력으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믿음은 사회책임투자가 갖고 있는 상생의 정신을 음미할 때 더욱 커진다. 사회책임투자에 관심을 갖는 순간, 그 사람은 이미 다양성 속에 존재하는 공존과 상생의 바다에 흠뻑 빠진 터이기 때문이다.

'로마인 이야기'의 저자 시오노 나나미는 마지막 15권을 저술하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어찌 보면 나는 얼굴과 민족은 달랐지만 공생이 가능했던 세계를 썼다. 종교, 생각, 취향, 음식이 다른 사람들이 로마라는 한 울 타리 안에서 번영을 구가했던 시대가 있었다. 비관용으로 흐르고 있는 현대와 달리 로마는 관용의 시대, 다양성에 대한 개방의 시대였 다. 그것이 대제국을 건설한 힘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