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8월 2일 일요일

장하성펀드, 고래사냥일까 팬더보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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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출처 : www.radiokorea.com


일본의 포경산업은 국제적으로 악명이 높다. 작살과 그물 등으로 중무장한 이들 포경선들은 바다 어디에서나 고래가 눈에 띄면 작살 을 날리거나 그물을 쳐서 고래를 잡는다. 대개의 경우, 작살을 맞은 고래는 피를 많이 흘려 죽게 되고, 그물에 걸린 고래는 숨 을 쉬지 못해 결국 죽게 된다고 한다.

이렇게 포획된 고래는 해체장으로 운반되어 살은 살대로, 뼈는 뼈대로 분해된다. 이렇게 분해된 고래의 부위는 각각의 용도에 따라 밀 거래 된다. 이런 고래의 가치는 그 덩치만큼이나 크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귀신 고래는 약 3천 만원, 밍크고래는 약 1억 원 이 상 호가한다고 하니 말이다.

기업에도 고래사냥과 흡사한 사냥꾼들이 있다. 지난 1980년대 영국의 핸슨신탁(Hanson Trust)은 기업들에게 가히 공포 의 대상이었다. 요크셔 출신의 제임스 핸슨(J. Hanson)과 고든 화이트(G. White)가 세운 이 회사는 기업사냥의 대표적 인 펀드로 당대를 풍미한 바 있다.

핸슨신탁은 사업전망이 불투명하나, 현금, 부동산 등을 많이 보유하고 있는 벽돌회사나 담배회사 등을 주로 타깃으로 삼았다. 그들 은 공격 대상이 결정되면 즉각 주식 매집에 들어간다. 인수가 완료되면 피인수 회사의 본사 건물, 토지, 공장과 같은 고정자산 등 을 분해하여 팔아 치운다. 그리곤 그 매각 대금으로 부채를 갚은 다음, 회사의 가지치기 작업에 돌입한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회사 의 모양새가 갖춰지게 되어 시장가치가 치솟으면 곧바로 회사를 되팔거나 청산 절차를 통해 투자자금을 회수하고 이익을 실현한다.

이러한 형태의 매매기법을 일컬어 투기적 적대인수(Speculative Hostile Takeover)라고 한다. 이들은 기업을 법 인(法人)이 아닌 물적 집적체로 파악한다. 따라서 이들의 목표는 기업을 접수한 후, 가치제고를 통해 재 매각하여 투자이익을 극대화 시키는 것뿐이다. 이들의 투자기간도 역시 단기적이다.

물론 이러한 기업사냥에 대한 옹호론도 만만찮다. 옹호론자들은 기업사냥을 일컬어 기업 경영에 대한 외부감시기능의 하나일 뿐이라고 주 장한다. 즉, 대리인문제(Agency Problem)와 도덕적 해이, 그리고 참호구축(Entrenchment)이라는 주식회사 제도 의 문제들을 일거에 해결할 수 있는 효과적인 수단이라고까지 말한다.

화제를 바꿔 한 동물보호기구 이야기를 해보자. WWF(World Wildlife Fund)는 지난 1961년 스위스에 본부를 두 고 창설된 동물보호단체다. 이 기구의 로고는 바로 멸종위기에 처한 팬더곰의 그림이다. WWF는 지난 1980년부터 중국의 샨시 (Shaanxi) 주정부와 손 잡고 밀렵꾼들에 의해 멸종위기에 처한 팬더곰 구하기에 나서왔다. 이들은 주로 팬더곰의 주 서식지 를 중심으로 10,400평방 킬로미터에 걸쳐 약 50여 곳의 보호지역을 지정했다.

그리고 이 보호지역을 집중적으로 관찰하면서 팬더곰을 관리하고 있다. 때때로 이들은 보호지역을 벗어나는 팬더곰을 안전하게 포획해 서 다시 그 지역으로 갖다 놓기도 한다. 그 지역을 이탈하면 쉽게 밀렵꾼들의 사냥감이 될 위험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들 의 포획은 적대적 포획이 아니라, 매우 친절하면서도 우호적인 포획인 것이다.

자본시장에도 팬더곰 보호캠페인이 존재한다. 바로 사회책임투자의 관여전략(Engagement)이 그것이다. 주식보관자 (Shareholder)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주식의 주인(Shareowner)이 되기를 원하는 사회책임투자자들은 때때로 기업 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해 적극적인 간섭을 하기도 한다.

그와 유사한 사례가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발생했다. '장하성펀드'와 '태광산업'간의 불꽃 튀는 공방이 바로 그것이다. 태광산업 지 분 5.15%를 취득한 이 펀드가 70%의 절대 지분을 갖고 있는 회사를 상대로 관여전략의 시동을 건 것이다. 문제점을 적시하 여, 고칠 것은 고쳐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 펀드의 투자기법은 한 투자펀드의 볼멘 소리쯤으로 치부될 지 모르지만 그 행간을 들여 다 보면 음미할 만한 대목이 많다.

우리나라의 경우 과거 수 십 년 동안 외부주주권은 상당부분 무시당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소수의 지배주주가 이사회를 장악하 고 주주총회는 들러리를 서온 마당에 기업에 대한 '견제와 균형'이라는 말은 사실상 호사가들의 담론쯤으로 치부되었다. 투자한 기업 의 주주이익, 사회에 대한 책임의 이행여부 등의 문제는 고사하고 1인 대주주를 위한 편법과 반칙을 써도 주주들은 먼산만 바라보 고 신세 한탄만 할 뿐 딱히 선택할 수단이 없었다.

이러한 수동적 주주의 문제를 직시하고 생겨난 투자방법이 바로 사회책임투자다. 그러나 사회책임투자의 관여전략은 기업사냥에 있지 않 다. 그렇기 때문에 대개의 경우 5% 내외의 지분 취득에 머물게 된다. 지분 취득 후 그것에 부수되는 주주권을 하나의 자산으로 간 주해서 그것을 적극적으로 활용함으로써 기업과 주주와의 상생의 터전을 닦아 나가는 것이다. 어쩌면 현실화될지 모르는 위험을 판별하 여 소 잃기 전에 외양간부터 미리 고치자고 제안하는 것이다.

'장하성펀드'는 분명 새로운 지평을 열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다만, 그것이 식도락가만의 식탁을 위해 마구잡이로 행해지는 고래사냥 의 유형에 머물지, 아니면 팬더 곰 보호 캠페인처럼 귀엽고 사랑스런 동물을 우리의 후세에게까지 넘겨주는 친절한 보호캠페인 이 될 수 있을지는 시간을 두고 좀더 지켜 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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