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8월 2일 일요일

공존과 상생의 바다, 사회책임투자

나이 마흔을 훌쩍 넘기고 시작했던 영국 MBA과정은 내겐 그리 녹록하지 않았다. 넘기 힘든 벽들이 참 많았다. 무엇보다 유럽 중심적 문화와 생각, 언어의 차이를 이해하고 극복하는 일이 생각보다 간단치 않았다.

그러나 소득도 많았다. 그 중에 가장 큰 소득을 들라면 나는 단연코 '다양성을 존중해 주는 법'을 꼽고 싶다.

강의실 안이건 밖이건 특정 이슈에 대해 논의할 때면 늘 격론이 벌어졌다. 다양한 가정들, 예기치 못한 전제의 재설정, 다양한 문화 와 관습에 대한 존중과 냉철한 비판들, 끊임없이 쏟아지는 질문들로 인해 캠퍼스 안은 늘 시끄럽고 북적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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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출처 : business.uwyo.edu


예컨대 수업시간 중에 교수가 특정 주제를 던진다. 그러면 너나 할 것 없이 일어나 각자의 관점에서 의견을 말한다. 서로의 다른 관점들이 부딪힌다. 일견 토론은 서너 명이 뒤엉킨 패싸움의 형국으로 변하는 듯했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싸움이 아니었다. 단지 생각과 관점의 교환시장에서 벌어지는 시끄러운 흥정 같았다. 마치 성업하는 시장이 요란스 럽듯 그것은 서로에게 더 큰 공동이익을 위해 어느 만큼 내 이익을 포기하고 상대의 이익을 수용할 수 있는가를 냉정하게 따져보는 과 정에 불과했다.

최근 나는 사회책임투자(SRI)에 관심이 있는 여러 사람들을 만나고 있다. 그들은 다양한 입장에 처한 사람들이기도 하다. 시민단체에서부터 학계, 투자자에서부터 기업체 인사들까지 망라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들을 만나면서 나는 또 한번 사회책임투자의 다양성에 대해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어떤 사람들은 '사회책임'을 일컬어 '지속가능 성'이라고 한다. '사회책임'이라는 용어가 자칫 기업들에게 부담이 될지도 모른다는 염려 때문이다. 따라서 '사회책임투자'는 곧 ' 지속가능 책임투자'로 바꿔 사용되어야 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다른 사람들은 '지속가능성'은 환경론자들의 이미지를 풍기므로 부담스럽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래서 그들은 '사회책임'을 그대로 사용 하자고 말한다. 기업이 아무리 경제적 계약 단위라고 하더라도 사회 내에 실재한다면 협의건 광의건 어떤 식으로라도 사회적 책임을 다 해야 한다는 것이 그들의 논거일 터다.

사회책임투자의 ESG(환경, 사회, 지배구조) 기준에서도 동상이몽을 발견하게 된다. 환경이라는 같은 배에서도 저마다 다른 이해관계 자들이 다른 꿈을 꾼다. 시민단체들은 기업들에게 상당히 엄격한 잣대를 요구하는 반면 기업들은 시민단체들이 너무 규범적이고 명분 에 치우친 채 기업 현실을 잘 모른다고 말한다.

노동 문제의 이해관계자들은 사회책임투자가 기업의 종업원 관련 정책 같은 이슈에 더욱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말한다. 반면 기업 관계자들에게 이 문제는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을 둘러싼 문제 중 하나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소비자 문제로 가도 비슷한 논의가 전개된다. 소비자 단체는, 소비자는 구매를 통하여 기업에게 자금을 유입시켜주는 가장 중요한 이해 관계자라고 일갈한다. 지배구조 관련 단체는 CEO와 이사회 의장은 분리되어야 하고, 사외이사의 수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고 말한 다.

반면, 기업은 이 모든 문제는 기업의 치열한 경쟁현실과 관련 지어 생각해야 한다고 반박한다. 투자자들 내부에도 다양한 혼란이 벌어진다.

이것이 곧 사회책임투자다. 네거티브 스크리닝을 한다면 이런 기준으로 해야 한다. 관여 전략을 실행에 옮기려면 이러한 원칙들을 세워 야 한다. ESG 분석과 전통적 재무분석을 통합하기 위해서는 이 정도는 해야 정답이다 등등 참으로 많은 목소리들이 존재하는 것 도 사실이다.

나는 앞서 제기된 다양한 시각들에 대해 결론적 의견을 제시할 만한 입장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만 그러한 다양하고 첨예한 '다름' 이 결코 '틀림'이 아니기에 서로가 서로에게 귀를 열고 가슴을 연다면 그러한 다양성은 이제 막 강 상류를 출발한 사회책임투자라 는 물줄기를 이끄는 추동력으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믿음은 사회책임투자가 갖고 있는 상생의 정신을 음미할 때 더욱 커진다. 사회책임투자에 관심을 갖는 순간, 그 사람은 이미 다양성 속에 존재하는 공존과 상생의 바다에 흠뻑 빠진 터이기 때문이다.

'로마인 이야기'의 저자 시오노 나나미는 마지막 15권을 저술하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어찌 보면 나는 얼굴과 민족은 달랐지만 공생이 가능했던 세계를 썼다. 종교, 생각, 취향, 음식이 다른 사람들이 로마라는 한 울 타리 안에서 번영을 구가했던 시대가 있었다. 비관용으로 흐르고 있는 현대와 달리 로마는 관용의 시대, 다양성에 대한 개방의 시대였 다. 그것이 대제국을 건설한 힘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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