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이미지출처 : ipcp.edunet4u.net
최근 나는 우연한 기회에 이 시를 다시 접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참 놀랍게도 이 시를 관류하는 서정 속에서 나는 사회책임투자 중 '관여전략((Engagement)'의 일단을 만났다.
관여전략이란 주주가 기업의 문제에 대해 개선책을 제시하며 기업과 대화하는 투자전략을 말한다. 이 기법은 전통적인 수동적 투자방법 에 익숙해 있는 일반인들에게는 다소 낯설기도 하고 때로는 기업에 대해 반대만 일삼는 이상한 투자방법으로 치부될 수도 있다. 그러 나 내용을 면밀히 들여다 보면 음미할 만 대목들이 참 많다.
우선 시간을 거슬러, 회사법(Company Act)이 만들어졌던 19세기 영국의 빅토리안 시대로 가보자. 최악의 상황에도 투자 한 돈만 날리면 되는 대신(유한책임), 투자한 사람들에게 임의적으로 매매할 수 있는 주권을 교부했던(소유권 유통) '주식회사 제도 '의 등장은 그 당시 가히 혁명적 사건이었다.
금융시장 발달에 따라 기업은 주권 발행을 통해 거대 자본 조달이 용이해졌다. 투자자들은 유한책임으로 이 기업, 저 기업의 주인이 되어 수익을 추구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
문제는 여기서부터다. 금융시장의 규모와 참여자가 증가하고, 기업 경영이 날로 전문화되면서 회사법 상의 주인인 주주들은 흩어지고, 그들의 얼굴은 점점 무대의 저편으로 사라져 버린 것이다.
최근 수십년 동안 매매 시스템의 고도화와 매매의 용이성으로 이러한 현상은 심화했다. 따라서 기업은 무주공산(無主空山)이 됐다. 주 인이 없는 그 지점에서 경영진은 그들만의 잔칫상에 몰입하게 된다. 여기서 발생한 대표적 사건들이 바로 엔론(Enron) 추문이 며 우리의 경우에는 SK 글로벌의 분식회계 사건이다.
관여전략을 채용하는 대다수의 사회책임투자자들은 시비거리만 찾는 트러블 메이커들이 아니다. 그들의 전략은 기업의 법적 주인들로서 그 들의 잃어 버린 주권을 되찾으려는 시도다. 시장 기능의 중심축을 기업과 지배주주로부터 투자자의 방향으로 옮겨 놓음으로써 견제와 균 형을 담보하려는 노력이다. 아울러 기업과 함께 공동의 문제를 함께 풀어 보자는 대화의 몸짓이다.
또한 그러한 시도들은 자신들이 투자한 자금을 정확히 관리하려는 의지의 선언이다. 혹, 남의 자금을 관리하는 수탁자(Trustee) 라면 수익자(Beneficiary)에 대한 성실한 의무(Fiduciary Duty)를 다하려는 것이다. 내 돈이라면 그렇게 수동적 일 수 있는가라는 물음에 대하여 "그럴 수 없다"라고 외치는 결연한 의지의 표명인 것이다.
주주가 침묵할 때 일견 시장은 고요할 수 있다. 주주가 기업에게 다가가지 않을 때 시장은 평온한 듯 보인다. 그러나 주주와 기업 이 만나는 접점이 단지 주식을 사고 파는 매매 시스템 그리고 유가증권 잔고내역에만 한정된다면 시장은 바닥부터 부패할 가능성 이 꽤 높다.
그리고 그 사이 주주권은 감옥에 갇히는 격이 되고 만다. 여러 가지 유형의 철창들이 존재하는 감옥에 말이다. 개발경제의 부산물 인 친기업적 정서와 제도, 지배주주에 대한 충성심으로 중무장한 임원들, 기관투자자들의 수동적 투자와 단기 투자, 이사책무 의 ABCD도 모르는 이사회, 시장을 단순히 자본 조달창구로만 알 뿐 시장에 대한 의무에는 소홀한 경영진, 이 모든 기제에 줏 대 없이 들락거리는 대다수 정치인, 관료와 언론들, 이 모두가 주주권을 감금하는 보이지 않는 철창들이다.
"그에게로 가서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주주권의 철창 속에서 주주가 기업에게 다가가기 전 그는 하나의 투자자(투기꾼)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철창이 걷히고 기업에게 다 가갈 때 투자자(투기꾼)는 비로소 기업의 주인이 된다. 마치 그의 이름을 불러 주지 않았을 때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불과했듯 이. 그의 이름을 불러주니 그는 내게 와 하나의 꽃으로 승화되었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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