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8월 2일 일요일

산책로와 음악회의 사회적 책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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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출처 : tvpot.daum.net


오래 전 런던에서 4년 동안 생활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 그러나 처음 1년여 동안 그 곳 생활에 적응하기가 어려웠다. 맛 없는 음식, 친절한 것 같지만 비사교적인 영국사람들의 태도, 조용하고 적막하기만 한 동네분위기, 변덕스런 날씨 등 눈을 씻고 찾아 봐도 맘에 드는 구석이 참 없었다.

궁하면 통한다고 했던가? 결국 나는 생활의 활력소를 찾기 위해 두 가지 계획을 세웠다. 그 중 첫 번째는 매일 아침 조깅을 하 는 것이었고, 그 다음은 내 오랜 취미였으나 십 수년의 직장 생활 동안 멀리할 수 밖에 없었던 클래식 음악회를 자주 가는 것이었 다. 마침 집 주위엔 훌륭한 산책로가 있었고, 또 30여분만 가면 런던 중심가의 유명 콘서트홀에 갈 수 있는 접근성도 갖추고 있었 다.

아마도 그것은 내 인생 최고의 결정이었다. 왜냐하면 한국에 돌아온 지금까지도 달리기와 음악회 감상을 계속하고 있기 때문이다. 남들 은 가끔 중독상태라고 말하지만 나는 6년 넘게 지속된 이 두 가지 취미만큼 내 정신과 육체건강에 좋은 것은 없다고 믿는다. 그런 데 이 취미를 즐기면서 나는 런던의 산책로, 콘서트홀과 우리나라의 그것들과는 큰 차이점들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우선 런던의 산책로를 달리면서 나는 한번도 다른 산책객들과 부딪히거나 남들로 인해 내 달리기를 방해 받은 적이 없었다. 달리는 사 람은 앞을 살피고 산책객들은 항상 등 뒤를 살피며 혹시 다른 속도의 산책로 이용자들, 예컨대 달리는 사람과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 의 진로를 방해하지 않을까 노심초사한다.

애완견의 천국인 영국의 산책로에는 여러 종류의 애완견들이 눈에 띈다. 그러나 나는 애완견들로 인해 내 조깅의 유쾌함이 반감되었 던 기억이 없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산책객들은 애완견을 끈으로 묶어 남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도록 배려하며, 혹시 애완견이 오물 을 배설하면 비닐봉투를 상비하여 철저히 치우기 때문이다.

또한 나는 런던의 콘서트홀에서 음악회를 감상하면서 다른 청중들의 핸드폰 벨소리로 인해 음악회 감상을 방해 받아본 적이 없다. 음악 회장 안에서 소음을 내거나 잡담을 한다는 것은 정말 상상도 할 수 없는 금기이기 때문이다. 그 누구도 음악회 티켓을 구입했다는 이 유로 오랫동안 공들여 무대에 오른 연주자들과 그것을 감상하기 위해 기꺼이 시간과 돈을 지불한 다른 청중들의 귀중한 시간을 방해 할 수 있는 권리를 갖고 있지 않다.

그러나 다시 고국에 돌아온 후 나는 정반대의 상황을 자주 접하게 된다. 집 주위의 산책로를 달릴 때마다 나는 간혹 유쾌하지 않 은 경험을 하기 때문이다. 우선 삼삼오오 길을 걷는 사람들은 대부분 산책로의 좌우 폭을 점령하고 걷는다. 그리곤 전혀 다른 이들 을 배려하지 않는다. 따라서 달리는 사람들과 자건거를 타는 사람들은 방해 받기 십상이다. 또한 부쩍 늘어난 애완견들의 상당수가 통 제되지 않음으로써 개를 싫어하는 사람들이나, 달리는 사람들에겐 이만 저만 부담이 되는 것이 아니다.

음악회의 경우에도 비슷하다. 국내 유수의 음악회장에서도 가끔씩 핸드폰 벨 소리가 울려 음악회의 분위기가 깨져 버리는 것이 다. 몇 달 전 독일의 어느 아카펠라 합창단의 내한 연주회에서 직접 경험한 일이다. 합창단이 피치 파이프(Pitch pipe) 로 첫 음을 잡고 연주하려는 순간 어느 청중의 핸드폰 음악이 울렸다. 순간 합창단의 음정은 일순간에 무너지고 지휘자는 연주를 중단 하고 양해를 구한 후 다시 연주를 시작해야만 했다. 나는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산책로와 음악회장은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사용하는 공간이다. 즉 사유재가 아닌 공공재의성격을 띤다. 따라서 내 집안에서처럼 하 고 싶은 대로 행동할 수 있는 장소가 아니다. 만일 산책로처럼 특정인들이 공간을 독점하려 하거나 음악회장처럼 몇몇 청중이 소음 을 낸다면 특정인의 사적 편익으로 인해 다른 사람들의 사회적 편익이 제한을 당하거나 피해를 입게 된다. 이른바 경제학에서 말하 는 외부불경제의 효과가 일어나는 것이다.

요즘 국내에서 많이 이야기하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도 거창한 이슈 같지만 따지고 보면 우리가 생활 속에서 접하는 산책로나 음악회장 의 문제와 유사하게 접근할 수 있다. 특정 기업이 시장을 독점하려 하고 기업의 비용을 사회적 비용화하며 공공재를 무단으로 전용한다 면 시장을 통한 효율적 자원 배분과 그것을 통한 최적의 생산은 이뤄지지 않는다. 결국 공급과잉이나 공급과소가 발생하여 시장 은 그 존재의 기반을 상실하게 된다.

나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은 결국 가장 먼저 기업 이해관계자들의 사회적 책임 수준을 반영한다고 믿는다. 좋은 시스템과 윤 리 헌장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만들고 실행하는 기업 구성원들이 각자 인식을 바꿔야 한다. 그 인식 전환의 출발점은 산책로나 음악회장 과 같은 각자의 일상생활 속에서부터 찾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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