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8월 2일 일요일

밀턴을 추모하며 기업의 사회책임을 생각하다

41G1VJ13BFL._AA240_.jpg

이미지출처 : learnecon.blogspot.com


2006년 11월 16일은 세계경제사에 기억될 날이다. 자유주의 경제학의 거두인 밀턴 프리드먼(Milton Friedman)이 이 날 세상을 떠났다. 그는 60~70년대, 신 통화주의(New Monetarism)을 전면에 내걸고 당대의 주류였던 케인즈 학파 의 논리에 정면으로 맞섰다. 마침내 그는 1976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했고, 이 후 많은 추종자들을 거느리며 ‘시카고 학파’ 를 진두지휘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을 연구하는 진영에는 그리 달가운 존재가 아니었다. 그는 70년대 뉴욕타임즈에 "기업 의 사회적 책임은 바로 이익을 증대시키는 것이다" (The Social Responsibility of Business is to Increase Its Profits)라는 유명 한 칼럼을 기고했다. 자신의 저서 '자본주의와 자유'(Capitalism and Freedom)'에선 "기업은 그것을 소유하고 있 는 주주들을 위한 도구일 뿐"이라고 일갈했다. 이후 그의 논리는 CSR를 공격하는 학자들에게 매우 유용한 논거로 자주 차용됐다.

과연 그가 그 유명한 칼럼에서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또 그것이 약 30여 년이 지난 현재 우리나라 상황에는 어떤 시사점을 던 져 주는지 한번 생각해 보자. 그 칼럼의 핵심은 이렇게 정리될 수 있다. "자유로운 사회에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단 한 가지 만 존재한다. 즉, 그것은 기업이 사기와 부정 행위를 하지 않는 공정하고 자유로운 경쟁 환경, 즉 게임의 룰을 준수하는 범위 내에 서 이익을 증대시키기 위해 그들의 자원을 활용하며 행동하는 것이다."

찬찬히 읽어 보니, 그가 기업의 이익 극대화에 있어서 두 가지 전제를 달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우선, '사기와 부정행위 가 없는'이라는 전제와, '공정하고 자유로운 경쟁환경'이라는 또 다른 전제이다. 따라서 축자적 해석을 하자면 '변칙과 범법행위 없 이 공정한 완전경쟁 시장 하에서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이 곧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라고 재해석할 수 있다.

좀 더 자세히 생각해 보자. 첫번째, '사기와 부정행위가 없는'이란 준법과 지배구조 차원의 문제로 해석된다. 그것은 법을 잘 지키 고, 이런 저런 비자금 금고들을 만들지 않는 것을 뜻한다. 또 기업 경영진들이 단 한 명의 지배주주나 그 일가에만 목숨 걸고 투명 하게 충성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주주들에 대해 그 지분에 상응한 대접을 하고, 대주주의 탈법적 변칙적 부의 세습에 그들의 귀중 한 시간을 허비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이런 면에서 오늘, 우리 기업들은 과연 사회에 책임적인가? 몇 퍼센트 안 되는 지분을 보유한(진정한 기업의 주인이라고 할 수 없는) 지배주주에만 책임적인가?

두번째의 조건을 나는 매우 중요하게 다루고 싶다. 즉, '공정하고 자유로운 경쟁환경' 하에서 만들어진 이익이 사회 책임적이라는 밀 턴의 견해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과거 40여 년 동안 공정한 시장에서의 공정한 거래라는 자유시장 주의의 원칙이 개발경제의 신속한 효율성과 그로 인해 탄생한 재벌체제의 수직적 집중성에 의해 뒷전으로 내몰렸던 우리에게는 더욱 그렇 다.

우리에게는, 기업의 비용을 밖으로 전가시키려는 ‘외부화의 문제’, 가격을 왜곡시키려는 ‘독과점과 담합’, 사회적 최적 해법 (Solution)을 가로막고 시장을 교란시키는 ‘불완전한 정보의 조작과 흐름’, 재벌체제 그들만의 잔치인 ‘내부거래의 문제’ 등 등 허다한 시장실패의 형태들이 등장하지 않았던가?

이렇게 밀턴의 글을 분해해서 생각해 보니, 그가 말하는 이익이란 화폐단위로 표시된 돈의 총량 그 자체가 아니다. 그가 말하는 사회 적 책임이란 단순히 돈만 많이 벌라는 의미가 아니다. ‘개같이 벌어 정승같이 쓰라’는 우리 식 속담은 더 더욱 아니다. 그보다 는 돈을 많이 벌되 구겨진 돈을 벌지 말고, 구린 돈도 멀리 하며, 검은 돈은 더더욱 아니다라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법과 게임 의 룰을 지키고 정직하게 벌어 들이는 이익이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라는 뜻이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우리 기업들이, 특히 우리 재벌기업들이 밀턴의 말대로만 사회책임을 이행했으면 한다. 비자금 사건이 터져 사회 공헌기금을 구태여 내지 않아도, 분식회계 등 실정법 위반 이후 공익사업이라는 애드벌룬을 띄우지 않아도, 사회적 물의를 빚은 후 신 파조의 광고문구를 언론 지면을 통해 남발하지 않더라도 좋다. 그저 묵묵히 법의 테두리 안에서 경쟁하고, 개발하고, 마케팅 하면 된 다. 그것이 곧 밀턴이 말하는 사회적 책임이다.

한 성공적인 비즈니스맨이 모교를 방문하여 옛 경제학 스승의 연구실에 찾아왔다.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제자는 스승의 탁자 위에 놓 인 기말고사 시험지를 발견했다. 시험문제를 읽어보던 제자는 깜짝 놀라면서 말했다. “교수님, 이건 교수님께서 15년 전에 저희들에 게 주셨던 문제들이랑 똑 같은 문제들인데요! 만일, 학생들이 옛 시험답안을 구해서 암기해 버리면 어떡하죠?” 교수는 껄껄 웃으 며 말했다. “괜찮네, 괜찮아. 문제는 매년 같아도 답은 매년 다르니까”

나는 밀턴이 우리나라에 와서 우리 상황의 문제를 바라본다면 이렇게 말했을 것 같다. "문제는 같아도 해석은 나라마다 다르니까"라고.

댓글 없음:

댓글 쓰기